2014/10/07 05:56

현대 히브리어의 탄생과 부활 세계사

현대 히브리어의 간판
현대 히브리어로 작성된 신문 기사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유대인들 특성상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었고 이에 모국어로 삼는 언어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세계 어디있던지 히브리어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유대인들이 성경에도 기록된 고대에 일어난  바빌론 유슈 이후로 구어체로는 사어가 되어버려서 예수 시대 유대인들은 당시 중동 지방의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했다. 물론 종교 경전인 토라 등은 히브리어로 읽었지만, 실생활에서 살아있는 언어는 이미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지방을 떠난 유대인 역시 정착한 지역의 언어를 배웠고 후대로 가면서 그 지역의 말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모국어가 되었다. 물론 이시기에도 유대인들은 종교교육 등을 통해 문어체로만 남게된 히브리어를 배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제 히브리어는 회당인 시나고그에서만 사용하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물론 중세시기에도 일부 유대인들이 편지 등에서 히브리어를 주로 사용했겠지만, 대부분 세계 각지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그 지역의 언어를 우선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8~19세기의 유대 계몽운동은 유대인 사회가 그 나라의 흡수되기 위해서 그나라의 언어를 배우도록 권장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19세기부터 유럽 사회에 반유대주의가 퍼지면서 유대인 지성인들 사이에서 그 사회에 정착이나 통합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대 계몽운동보다는 유대인으로서의 자각심·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닫는다.

 

  그후 유대인 학자 중 한명인 멘델레 모체르 스포림(1836~1917)은 러시아 사회에서의 유대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한계성을 깨닫고, 이디시어 문학을 지필했던 그는 조상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문어체로서의 히브리어를 복원시키는 작업이었다.

 

   현대 히브리어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벤 예후다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위해서는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에 말했듯이 당시 유대인들은 전혀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았고, 세계 각지의 흩어진 결과 그 지역이나 나라의 말을 모국어로 사용했다. 그후 벤 예후다는 집에서 가족끼리 대화할 때 히브리어만 사용했고, 히브리어 학교도 설립한다. 또한 토라, 탈무드 등을 기초로 하여 히브리어 사전을 만들었다. TV나 세탁기 등 성서나 탈무드 기록시대에 없었던 단어들은 새로이 만들어 내는 등의 노력 등으로 현대 히브리어가 탄생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1922년 영국은 팔레스타인 위임지역에서 히브리어를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했으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후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교나 실생활 등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하게 됨으로서 현재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 대부분이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하게 되었다.

 

 한때 거의 사어였던 언어가 이제는 한 나라의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공용어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은 언어 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본받을 만한 나라이다.

 

출처 자료http://blog.naver.com/urimal365?Redirect=Log&logNo=100169477562

               http://srkim4u.tistory.com/280

               http://blog.naver.com/koisraco?Redirect=Log&logNo=90154958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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