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2 12:12

1756년 외교 혁명(Diplomatic Revolution) 세계사

 1756년 유럽의 외교 혁명 상황...

 18세기 중엽에 발생한 유럽 외교사의 최대 사건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의 동맹국을 체인지했다. 원인은 오스트리아의 계승전쟁 당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슐레지엔을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먼저 프로이센이 준비가 될된 오스트리아군의 저항을 무너뜨리고 슐레지엔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후 프리드리히는 슐레지엔의 프로이센 영유권을 인정하면 마리아 테리지아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겠다고 주장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리드리히의 요구를 일거에 거절하고는 나이페르크(Neipperg)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슐레지엔 탈환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1741년 4월에 모르비츠, 1742년 5월에는 코츠시츠 등에서 프로이센에게 패하였고 이후 1742년 11월에 브레슬라우 조약이, 1745년 12월에 드레스덴 조약이 체결되어 최종적으로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하였다 이후 1748년의 아헨 조약에서도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를 명시하였다.

 슐레지엔을 되찾기 위하여 하우크비트를 등용한 내정 개혁과 다운에 의한 군제개혁, 카우니츠를 프랑스에 파견하여 1756년 베르사유에서 조약을 채결하여 제정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3세와 루이 15세,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 동맹을 맺었다. 이에 프로이센은 유럽에서의 고립을 피하기 위하여 영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오스트리아를 기습공격하여 7년 전쟁을 일으켰다. 게다가 동맹국이었던 영국이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고 프랑스와의 해외 식민지 경쟁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그동안 철천지 원수였던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버렸다. 그 이전까지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철천지 원수로서 200년 동안 전쟁을 진행해왔다.

 이렇게 되자 대륙에서 고립된 프로이센과 영국이 서로 접근하여 동맹을 맺었고 유럽에서는 대규모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7년 전쟁(1756년~1763년)이다. 또 동맹의 징표로서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 사이의 각종 정략결혼이 성립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마리 앙트와네트의 결혼이었다.

 결과는 둘다 실패....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동맹을 중단하고 영국과 다시 동맹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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