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48년은 유고슬라비아, 1948~61년은 구(舊)소련,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에 의해서 스탈린 독재정치에 비판이 소련 내부에서 나오면서 소련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1961~72년은 마오쩌둥이 집권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등 대외관계의 변화가 있었지만, 하지만, 마오쩌둥이 사망한 직후 덩샤오핑 등 개혁파가 집권하면서 중국과도 관계가 멀어졌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폐쇄정치를 표방하여 왔다. 1969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하였으며 코메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종교적으로는 1967년에 모든 종교를 금지하는 무종교 국가임을 선언하였다. 종교가 다시 허용된 것은 민주화되고 나서야 였다.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에서도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첫 참가하였으나, 그 다음부터는 계속 불참하여(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때까지 불참.) 민주화된 이후에서야 올림픽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다.
1985년 호자의 후계자로 라미즈 알리아가 정권을 장악하자 고립정책을 탈피하고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대외개방정책으로 전환하여 그리스·이탈리아·터키와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적 침체와 낙후성을 탈피하기 위한 체제개혁을 시도하였으나 보수적인 정치구조가 존속되어 효과가 미미하였다. 더구나 사회적 통제를 완화하고 문화부문의 창조적 사고의 제고를 강조하였으나 알바니아노동당의 당규와 마찰을 빚어 근본적인 개혁은 불가능하였다. 당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제일 낙후된 나라였다. 당시 알바니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400불 정도였다고 합니다.
1989년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 물결이 알바니아에도 불어 체제개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991년에 알바니아 전역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발생되어 다당제가 허용되고 1992년 인민회의에서 살리 베리샤를 국가수반으로 하는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과도기적 체제를 청산하였다. 1998년에는 마르크스적 헌법체계를 파기하고 신헌법의 초안이 마련되었으며, 국가명도 알바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편 알바니아는 1997년 금융피라미드 사건으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결과 내전까지 발생되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아주 폐쇄적인 사회주의 시기에 살다가 갑자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발생된 문제라고 보여진다. 올해 4월에 크로아티아와 함께 알바니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일명 나토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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